2013년 8월 11일 일요일

남이 당신을 성공시키도록 하라!

“Justice –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대학 강의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 교수가2012년 6월 1일 연세대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제목의 강의를 했다.  

이날 강의는 추첨에 의해서 무료입장권을 제공하였으나, 높은 관심 때문에 무료입장권이 암표로 판매될 정도였으며, 이 사건을 통해서 현재 한국은 '정의'에 대한 관심이 거의 폭발적일 정도로 크다는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종교가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어서 한번 간단히 생각해보았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면 길어지겠지만, 순간적인 내 대답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 또는 고통의 예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많은 방법으로 이를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참고로, 심리학자들은 두려움이 미래를 예견함으로서 얻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뭉크의 '절규')


만약 인간에게 두려움 또는 고통이 모두 사라진다면, 인간이 종교나 그 외의 것에 의존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종교는 인간이 두려움 또는 고통의 예견 때문에 존재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자신의 이외의 것에서 충족하기 때문인 것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인간이 외부에서 필요를 충족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명하다.

'왜 필요가 존재할까요? "라는 물음에 이에 대한 경제학의 해답은 자원의 희소성에 있지만, 더 근본적인 대답은 인간이 생물이기 때문이다. 

생물은 자신의 필요로 하는 것을 외부에서 얻고 필요 없는 것을 외부로 배출하는 일종의 자생하는 필터(거름막)로서 역할을 한다.

즉 생물의 기본 원리는 개체인 자신과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필요를 충족하며 자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의 이유는 확실하다. 

인간은 외부에서 자신의 필요한 것를 충족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는, 수학의 집합으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A와 B만으로 이루어진 집합에 있어서, 서로 독립적인 독립 부분과 서로에게 포함된 교집합인 공유 부분(A ∩ B)으로 나눌 수 있다. 





위 그림의 해석은, 한 개체(A)는 다른 것(B)과의 공유 부분을 통해서 자신(A)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B는 나 이외의 것, 즉 인간 또는 자연환경 등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공유 부분을 통해서 나와 관계를 맺게 된다.

하지만 이 공유 부분은 자신(A) 뿐만 아니라 다른 것(B)에도 동시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유권 또는 ‘누가 먼저 사용하는가?’에 관한 우선권 등의 권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욕심은 이 공유 부분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즉 개체(A)는 이 공유 부분을 통해서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이 공유 부분 때문에 다른 것(B)에 의해서 제약을 받을 수 있는 trade-off(상반) 관계가 성립한다.  

이를 아주 간략화하여 생각하면, 나(A)에게 발생하는 두려움 내지 고통의 예견은 이 공유 부분을 통해서 유발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즉 두려움 또는 고통의 예견은 일종의 물리적인 마찰 현상과 같이 공유 부분으로부터 발생된 심리적 마찰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열이 물체 사이의 마찰에 의해서  발생이듯이, 이 공유 부분으로부터 발생된 두려움 및 고통이 발생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 사회의 집단 성향이 마치 개미 집단처럼 매우 그리고 아주 강하고 강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 공유 부분에 의한 마찰을 이타성으로 극복하여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을 이루었고, 이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이 공유 부분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인간 문명의 토대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인간 사회에서 이 공유 부분은 인간 개인 사이 또는 개인과 집단 사이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공유 부분의 부작용으로 싸움과 전쟁이 있었지만 큰 흐름은 공유 부분을 통해서 함께 협조하는 것이었다.



집단 성향이 매우 강한 개미의 집


이제는 인간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이 공유 부분에 의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위 분석을 기초로 한다면,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1) 개인의 필요를 줄여서 자신에게 속한 공유 부분을 적게 가지는 피동적 방법, 2) 자신의 공유 부분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을 위해서 진심으로 버리는 능동적 방법, 3) 공유 부분을 빼앗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강압적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의 해결 방법인 피동적 방법은 철학자 또는 종교 등에서 많이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에 해당하는 종교는 불교가 언뜻 생각이 나고 또한 에피쿠로스 학파도 생각이 난다.

두 번째 해결인 능동적인 방법은 종교로는 기독교 등이 생각이 난다. 





즉, 종교에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라는 것은 결국 이 공유 부분에 의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공유 부분에 의한 집착을 버리는 방법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라는 주장한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 

물론 불교에도 두 번째 해결 방법을 병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해결방법인 강압적 방법은 일반인들이 자주 실행하는 방법인 것 같다.





위의 논의를 통해서 본다면, 종교는 이 공유 부분에 의한 충돌을 줄여서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공유 부분을 더 넓히거나 좁히는 데 관심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샌델 교수님이 말씀하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위의 논리에 의하면, 정의는 사회생활, 즉 공유 부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있을 때 개인 또는 집단이 먼저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인간에게 존재하는 아주 강한 집단성 때문에, 개인의 어떤 선택이 집단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개인이 먼저이고, 집단성에 해가 된다면 일단 집단이 먼저라는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 집단성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독재자가 자신만을 위해서 욕심을 부리면 이 국가는 망하지만, 이와 반대로 집단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대신 못 가진 자 등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인간의 강한 집당성으로 인한 공유 부분의 충돌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사회도 일종의 필터(거름막)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듣게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또는 실직 등의 위험이 증가하게 되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에서 집단에 대한 사랑은 아주 강해서 가수 유승준이 집단의 이익인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했을 때 그는 한국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그 대답은 아마 자신(A)의 것을 줄여서 공유 부분을 더 늘리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공유 부분을 남을 위해서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자기 희생인 것이다. 

그 예로 안철수씨의 사회적 명성은 일부분 자신의 공유 부분인 특권을 포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 사회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공유 부분은 내어 놓는 사람에게 환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런 사람에게 과대하게 포상을 하여서 그가 크게 성공하도록 돕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더불어, 종교 및 명상 등과 같이 마음의 수련이 하는 역할은 자기 것(A)에 대한 집착 등을 버림으로서 사람 간의 마찰을 줄이도록 자신에게 속한 공유 부분을 자신의 소유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집단의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서 센델 교수님이 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 공공성, 즉 공유 부분에 대한 배려를 말하는 것으로 일단 해석해 보았다.  

이 글의 결론은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자신의 것을 남에게 주라.'는 종교의 가르침에 도달하게 된다. 

진심으로.. 남을 위하면, 그러면 그가 너를 성공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