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남편이 쓴 분만일기

** part 1

99년 9월 3일 금요일 저녁부터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내의 분만 예정일은 아직도 13일 정도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가진통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한 아내도 이번이 초산이라 예정일보다 늦게 출산할 것이라 여겨 출산 휴가를 예정일보다 일주일전에 신청해 놓았기 때문에 아직도 아내의 출산 휴가까지는 일주일이 더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날 밤새 자는둥 마는둥 하더니 다음날인 토요일에 출근하기가 부담이 되는 눈치였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내일 출근을 어떻게 하느냐고 몇 번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이것이 단순한 가진통이라고 생각하고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잠시 후 담담한 얼굴로 출근했다.


나도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선산에 벌초를 하러 가야했다.


내가 산소로 출발하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이슬이 비쳤다며 내가 없는 사이 아기를 낳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산소로 출발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굉장히 막혔다. 나와 아버지는 벌초를 끝내고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근처에 도착하였다.


나와 아버지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에 갔으며, 이때 내가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계속 통화 중이었다.


집에 5번 정도를 더 전화한 끝에 겨우 아내와 연결되었다.


아내는 가뜩이나 겁이 많은 성격때문에 진통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여기저기 연락했단다.


나도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이때도 아내의 출산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매우 반가와 했다. 그 동안 진통 속에 아내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던 것 같다.


아내가 진통주기를 재어 보니 10분에서 7분 사이로 줄어들었고 다소 비주기적이었지만 전날보다는 빨라졌다고 했다.


아내는 점점 더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기가 태어나면 홈페이지를 만들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기록해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저녁에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 포토샵을 연습했다.


겨우 2~3일 연습하였는데 무척 재미가 있었다.


저녁 11시쯤 되어 다시 진통 주기를 재어보던 아내는 밤에 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르니 나에게 미리 잠을 자두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비로소 이때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출산준비를 할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으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part 2


다음날 1999년 9월 5일 일요일 새벽 2시 30분에 갑자기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깨웠다.


나는 잠에 취해서 정신이 없었으나 언뜻 아내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양수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때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병원에 갈 준비를 하였다.


이때 내가 느낀 감정은 조금 묘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차분하고도 담담하게 가다듬고 병원에 가져갈 물건들을 챙겼다.


옷 입고, 시계차고 ... 나는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아내를 보니 준비할 것이 조금 더 남은 모양이다.


우리는 약 5분만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려니 아내는 그 와중에도 습관적으로 문손잡이를 다시 돌려보고 문이 잠겼는지를 확인한다.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때는 언제이지라는 생각에 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약 20분 거리이다. 내가 차를 몰고 갈 때 조금 졸음이 밀려왔지만 가슴에서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 때문인지 차를 몰수록 내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에 등록을 하고 분만실로 올라갔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는 양수가 터진 것인지 검사를 해 보고 맞으면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를 데리고 분만실 안으로 사라졌다.


약 10분 후 간호사가 다시 나왔다. 양수가 나온 것이 맞고 자궁이 3cm정도 열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입원 수속을 하고 아버지과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드렸다. 장인, 장모님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신 것 같았다.


분만실 앞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간호사가 '라마즈 하셨죠?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나는 간호사가 건네주는 푸른색 수술복같은 옷을 입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이전에 아내와 같이 라마즈 배울 때 한번 가보았던 곳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약간 어색했다.


내가 들어가니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를 보고 조금 안심이 되는 눈치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간호사는 아내를 보고 '호흡을 하세요.'라고 한다. 아내는 하나, 둘, 셋 이미 배웠던 라마즈 호흡을 시작했다.


진통이 올 때마다 1단계 호흡을 했다. 호흡법은 총 4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분만 때 힘을 주는 마지막 4단계만 빼고 남편이 아내와 같이 라마즈 호흡법을 도와주게 되어 있다.


아내의 진통 주기가 빨라짐에 따라 호흡법이 달라지지만 모두 아주 단순하게 반복하는 방식이다. 처음 아내의 진통은 약 1분간이었으며 차츰 길어졌다.


한참 후에 간호사가 장인, 장모님이 밖에 찾아오셨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나가서 진행사항을 말씀드리고 지금은 하실 일이 없으므로 다시 집으로 가시도록 했다.


다시 분만실에 들어와 보니 아내의 진통은 약 7분 간격으로 훨씬 빨라졌다.


그래도 아내는 호흡법 덕분인지 다른 산모보다는 많이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담당 간호사가 말했다.


새벽 5시가 되자 나와 아내는 모두 힘이 들고 지쳤다.


그러나 점점 더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니 불쌍하다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아내는 진통이 와도 열심히 참으려 하고 라마즈 호흡법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더욱 힘이들자 아내는 간호사에게 '진통이 올 때 자꾸만 힘을 주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몇 번씩 되물어본다.


내게도 아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


분만시 이완이 제일 중요하다고 배운 나는 아내에게 힘주지 말고 이완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내는 계속 힘들어 하며 이제는 라마즈 호흡도 잘하지 못했다.


아내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모습이 너무 불쌍하다.


나도 같이 라마즈 호흡을 더욱 크게 해주며 아내에게 계속 따라 하라고 하지만 잘 안 된다.


이때 꼭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그러나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5cm정도 열렸다고만 한다. 10cm까지 열려야 하니 아직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진 후에는 아내의 진통이 조금 덜한 것 같다. 어느 틈에 창밖이 훤해 있었다.


 간호사들이 교대를 했는지 새로운 얼굴들이다.


이전 간호사보다 친절하여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7cm정도 열렸다고 한다.


이때, 아내는 더 힘들어하고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배가 바위덩이처럼 딱딱해졌다.


진짜 바위 같이 느껴지며 이때 나도 순간 놀랬다. 이것은 라마즈에서 배운 이완이 안되기 때문이다.


아내는 배에 힘이 들어갈 때 배를 쓰다듬어 달라기에 내가 아내의 배를 쓸어주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내의 배가 딱딱해질 때마다 아내의 배 위로 아기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아기가 움직이는 것이 내 손으로 느껴진다. 이제, 아기도 하늘을 보려고 힘을 주는 것 같다.


이때의 아내 얼굴은 아주 엉망이 되었도 이런 아내를 보는 나도 힘이 든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라마즈 호흡을 해주고 배도 열심히 쓸어주었다.


이제, 거의 아침 9시가 되니 간호사는 이제는 분만실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했다.


아내를 혼자 남겨 두고 나가자니 내 발이 안 떨어졌다.


나는 '여보 힘내!'라는 흔한 말 한 마디도 남기지도 못하고 나왔지만 이때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아무 말이든지 했어야 했다라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때가 진짜 힘든 시기인데 아내에게 좀 더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약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 part 3


갑자기 나는 배가 고파져서 지하 1층에 가서 산모보다 먼저 미역국을 사먹었다.


밤새도록 힘을 써서 인지 미역국은 맛이 있었다.


식사 후 분만실로 다시 올라가 보니 분만실 밖에는 처음 보는 몇명의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몇 분 후에 '보호자님 아들입니다.


9월 5일 9시 48분에 태어난 3.27㎏의 건강한 아기입니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이것은 의외였다.


아내는 임신 기간 내내 배모양과 엉덩이를 보니 딸 같다라고 나에게 말했으며 이 말 때문에 나도 계속 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기를 안고 있던 간호사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네요.


손가락이 다섯 개이고 발가락이 다섯 개고요. 아들 맞죠?'라며 나에게 아기의 발찌를 보여주었다.


이때 아이를 보는 나는 이것이 내 아이구나라는 기쁨보다는 아내의 고통이 이제는 끝났구나라는 것이 더 위안이 되었다.


아내가 나중에 말하기를 아이를 낳자마자 간호원들 모두가 아이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했단다.


나중에 아내에게 그 긴 출산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었냐고 물으니 '고통은 반드시 지나간다.


언젠가는 끝이 난다.'라는 생각으로 버티었다라고 입가에 조그만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했다.